'촌닭이 되다'
어제 정월대보름
오후 네시반에 주무이에 손을 넣고
농장으로 들어오시는 동네 형에서부터
부녀회원님들
아이구 여 안에는 안춥네...
이어 총무님 승용차가 깊숙이 밀고 들어오니
아마도 먹거리를 실으신 모양입니다.
너도 나도 받아들고 나르기를 잠시
떡에서 과일 술음료 갖가지 나물 김치
도마 그릇 봉다리 등
마을회관(경로회관)에서 해 오던 일을
연회장이 생기고부터는
차리기 좋고, 마주보고 앉아 먹기 좋고,
놀기 좋고,치우기 좋고,설겆이하기 좋다시는 이곳으로 향하시니
이렇게 주민들이 다 함께 모이는 날은
얼굴들이 환하게 빛이 납니다.
척박한 시골 마을이지만
이처럼 마을 안 좋은 시설에서
먹고 마시고 흔들며
이웃의 정을 두텁게 하며 놀 수 있는 기쁨을 상상이나 하셨겠습니까
흥겹도록 마시고 애창곡들을 쏟아내며
운전하지 않고 몇 걸음만으로 돌아가실 수 있으니
어제는
우리 마을을 이렇게 빛내주시니
공로패 큰 거 하나 준비해라 카끼요...
원주민은 고작 열 가구 정도 남았고
나머지 한 마흔 가구 정도는 전입하신 분들이시니
불과 한 십년 사이에
보름문화도 크게 변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 치고 장구 치고...
새끼줄 걸어 윷놀이 하느라
수군푸(삽) 곡괭이 양대(대야) 바가지 주전자 등을 상품으로 마련하고
갖가지 나물들과 김치 등
십시일반 반찬들을 내와 떡국과 함께
막걸리 말통을 비워가며 온종일 놀고
저녁달에 짚단을 세워 불지르며
소원을 빌던 때가 엊그저께 같기만 한데
어느새
전화 한 통으로 떡과 바다회를 부르고
평균연령 60대 부녀회에서
장을 보시고 같이 나물을 장만하시고
먹음직스런 잔파김치를 벌겋게 담아서
각기 장기를 가지신 분은
악기(색소폰)와 부속장비 들고 오셔서
무대위에서 반짝이는 조명등 아래
멋드러지게 자선공연을 펼쳐주시기도 하시니
버스다니는 길과 1킬로이상 먼 거리의
오지 마을에 주민들 교통불편을 해소하고자 관에서 시행한 '100원택시',
100원으로 택시를 불러
면소재지에 한해 한달에 30회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을 부여받아
연로하시거나 자가용이 없는 세대에
편의를 제공하는 이런 시골 오지마을에
보름의 풍속도가 달라지고
흔히 '문화'라고 일컫는 고품격 단어를
적용할 수도 있는 이런 광경을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제 아지매
징 꽹과리 북 장고 풍악에 맞춰
덩실덩실 팔과 어깨를 들썩이며
동네가 떠나가리만치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뭇짐승들도 입춘 추위도 달아나고 말았던 그런 정겨운 풍경에서
머리가 허연 형님 형수님
무대에 오르시고 마이크를 잡고
화면속 반주에 맞춰 목청껏 소리도 질러보시고
도회지에서 쌓은 노련한 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하시는 총무님께선
봉투를 세 장만 달라시더니
상품을 걸어야 아지매들이 잘 노시지...
흥을 돋구는 비법을 선보이시니
주저할 것도 눈치볼 것도 없이
젊은 시절 한가닥 하셨던 율동들도
자연스레 어울림으로 융화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세 시간이란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남겨 두시고
남은 나물과 떡 과일 봉지봉지 나눠들고서는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여 강당 이래 이용하는데는 얼매요?
방 함 볼 수 있습미꺼?
울아저씨 모임이 담달에 있는데...
이번주 아부님 생신이신데...
도방동에서 전화 안왔등교 찾던데...
급하기 서둘지 마시고 천천히 잘 댈낍미더~
여 음향이 참 좋네예~
내싸 마 노래도 모리고 큰 기림 저거만 바도 기경 좋데요...
평생 살면서 보름 이래 찐하게 보낸 적 없었는데...
온수가 나오는 실내 씽크대가 있으니
부녀회원님들 스스로
다 치우시고 설겆이를 하고 가셔서
치울 것도
닦을 것도 없이
장비를 꺼고 문만 잠궜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