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저물어
검은 그림자 엄습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깜깜한 어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누구와 함께 있노라면
달도 별도 볼 수 있게
살짝 가려주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요.
'그대 있는 곳에'
그대 있는 곳에
항상 나 있네
볕드는
언덕 아래에도
바람부는
골짜기에도
일렁이는
물결 위에도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그대 있는 곳에
항상 나 있네
오늘도 위양지로 걸음이 향했습니다.
바람은 좀 자는 편이었지만
하늘은 연하게 푸르렀고
구름이 없어 그냥 잔잔한 반영만 나타내고 있어
걸음을 옮겨가며 나무들을 살피고 있었는데
서서히 하늘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운좋게 몇 장면들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의 저녁은
굳이 시간을 말하지 않아도
서산 너머로 해가 기울고나면
이내 매서운 바람이 몰고오는 추위를
등에 업고
짙은 어움의 그림자가가 불쑥 밀려들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뛰놀다가도
급습하는 그 공포를 몸으로 당해보았는지라
옷을 대충 털고
잰걸음으로 제각각 집으로 달려가기 마련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소는 소대로 어미소에 맞는 보온요를
송아지는 헌옷감으로 둥쳐메어 주었고
겁이 많은 얌생이는 짚단으로 둘레를 가려
야생 짐승들에게서도 보호하고
추위도 막아주었습니다.
또한 토까이 집도
달구새끼 헛간도
두 번 세 번 뒷단도리를 마치고서야
새미가에 가서 손을 씻고
저녁상이 차려질 안방을 향했습니다.
어두컴컴한 정지(정줏간,부엌)에서
시쿰한 김치를 넣어 끓인 비지찌개가
묘한 냄새를 피울 즈음
철을 따라 온 오리들도
어둠을 헤치고 까~악 까~악 까까악 하며
삼삼오오 마을 앞 소류지로 날아드니
저넘들도 덜 언 곳을 찾아다닌다는 것을
그때는 눈치 챌 수 없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제각각 따스한 곳으로 향하는,
마치 어미품을 찾듯
지친 몸을 뉘어 쉴 곳으로 향한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도 행복한 걸음이었음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 준 것은
중학교를 다니던 열서너살때 일입니다.
그 당시는 중학생일지라도
버스가 다니는 비포장 자갈길 신작로에서도 더 멀리 떨어져
등하교 교통편이 수월하지 않았던
시골마을들 더러 시내에
단칸방을 얻어 자취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중3이었던 작은형을 따라
중1이었음에도 덩달아 자취하게 되었으니
학교를 마치면 자취방에 도착해서는
연탄불을 갈고 쌀을 씻어 석유곤로에
노랑 냄비를 얹어 밥을 하고
연탄불에는 궁물이 있는 것들을 끓이거나
데우는 식으로 매 끼니를 해결해야 했으므로
해가 지고 어둠을 맞는다는 것은
스스로 먹거리를 장만해야 하는
번거로움에서라기보다는
더없이 따스하고 한없이 평온했던
어미품에서 떠나 있다는 불안감에서 시작되어
깜깜한 어둠속 세상과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의 공포감이 뼛속까지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되뇌어 봅니다.
주로 하는 쌀농사는 양식으로
부속적인 채소가지들은 부식재로 데치고 삶아 말리거나 해서 일년 사계절을 견뎌야 했으니
두드러진 수입이라고는 짐승들 키워서 내거나
계란을 엮어서 내다 파는 등
불특정한 소득으로 가난을 이겨내었던 시절이라
소가 농삿일 뿐만 아니라 재산 밑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는데
어김없이 일년에 한마리 정도는 꼭 낳아주었으니
배가 불러 새끼를 낳을 기미가 보이면
깨끗한 새 깔짚을 넣어주고
온식구들이 정숙하게 지켜보곤 하였고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힘들어 하면
호흡에 맞춰 손으로 잡아당겨 주기도
하며 순산하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어미는 연신 귀여운 송아지를 핱아주고
젖을 먹이고...
그렇게 그렇게 정이 곱게 들즈음
낯선 사람이 와서 들여다보고는
몇날며칠 새벽에 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가니...
어두컴컴한 새벽에 하얀 눈송이가 가볍게
내린 차가운 날,
아부지는 일찌기 삽짝문을 여셨고
곱은 덩기(딩기)를 듬뿍 섞어 뜨끈하고 달근한 여물을
송아지에게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해가 뜨기도 전에
그 낯선 사람이 오셔서는
목덜미에 밧줄을 걸어 매듭을 짓더니만
앞장서 끌고나가니 생전 처음
낯선 사람의 손에 낯선 곳으로 이끌림을 당하는 공포에 휩싸인 탓인지
묽은 똥(생똥)을 군데군데 흘리며
이리저리 비틀고 날뛰어 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되고 말았고
그렇게 그렇게 이별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 한 채 끌려가고야 말았던 애틋한 새끼가
얼마나 애초로웠던지
마굿간을 빙빙돌며 삼일 밤낮을 자지 않고 목이 메여라 울다 울다 지치니
온동네가 뉘집 송아지 팔려나간 줄 다 아시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을 테지요.
요즘도 저녁무렵이면 길을 가다가도
남의 집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된장찌개 냄새에
걸음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아 깊이 흡입해 봅니다.
혹 예전에 찬 데 나갔다 오면
이불밑에 넣어두셨던 밥그릇에
굵은 미리치 던져넣고
뒨장 두어술 으깨어
호박 무시 썰어넣고 끓여
아궁이 잔불에 얹어두신 덕분으로 짤박짤박하게 비벼먹었던 그 냄새인가 싶어...

*위양지에는 야간 조명등이 둘레길을 밝힙니다.